🧊 영하 10도에 떠나게 된 서울 뚜벅이 미식 투어
작년 가을,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를 밤새 보면서, 언젠간 저기 나온 셰프의 식당에 가보자고 다짐했지만, 엄청난 예약 전쟁으로 감히 엄두도 못 내고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
그러던 올 초에, 운이 좋게도 여자친구의 언니분께서 못 갈 것 같다고 하시며, 오픈런해서 잡은 '요리하는 돌아이' 윤남노 셰프의 디핀옥수 예약 자리를 넘겨주셨다!
요즘 날이 너무 추웠던지라, 평소 같으면 차를 타고 등 따시게 다녀왔겠지만, 매번 오는 기회인가? 큰맘 먹고 여자친구와 와인 한 잔 하고 서울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 내복으로 무장하고 패딩 지퍼를 올려 버스 타고 서울로 향했다.
🍷 1코스: 옥수역 '디핀옥수'
건물을 들어갈 때와 입구 간판에서 느껴지는 허름함과는 달리, 내부에 들어서면 따뜻한 원목 느낌의 테이블과 넓게 뻗은 통창이 반겨준다. 조금 빈티지한 느낌이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를 매우 편안하게 꾸며둔 것으로 보이는데, 옆테이블과의 간격이 사진으로 보이다시피 검은색 식탁보와 물로 띄워둔 수준이라, 일행과 프라이빗하게 즐기기에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 주문은 다음과 같이 진행했다.
- 싸워도우 브레드 트러플 버터 (11,000원)
- 훈연 소고기타르트 4pcs (16,000원)
- 뇨끼 (26,000원)
- 아마트리치아나 스파게토니 (25,000원)
와인을 잘 몰라서 직원 분께 좋아하는 맛과 원하는 가격대를 말씀드렸고, 친절하게 몇 가지 와인을 추천해 주셔서, 사진에 있는 CARPINETO 와인으로 선택했다. 와인 가격대는 전체적으로 높은 것 같아서 아쉬웠다. (12만원 이상)
사실 여자친구도 나도 트러플 향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 고민이 있었지만,,, 모든 후기 글에서 이 1만 1천원짜리 빵을 추천하길래, 빵돌이로서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웬걸? 보기에는 평범한 이 바게트빵은 한 입 씹자마자 나에게 충격과 공포를 일깨워 주었다. 소문난 빵 맛집도 아닌데 이런 충격적인 겉바속촉을 구현할 수 있다니,,, 마치 베이커리에서 갓 나온 빵처럼 이 빵은 바삭한 겉의 식감과 촉촉하고 부드러운 안의 식감으로 내 혀는 댄스를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같이 나온 트러플 버터는, 내가 싫어하는 특유의 인위적인 트러플오일 향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꽤나 짭짤하면서 감칠맛을 돋워주는 게 이 사워도우라는 빵과 매우 잘 어울렸다. 싱겁게 먹으시는 분들에게는 좀 짤 수도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지만, 짠 음식을 좋아하는 나는 남은 버터를 숟가락으로 다 긁어먹었다. 오늘의 베스트 음식이 정해진 순간이었다.
빵을 다 먹으니 금방 다음 음식이 도착했다. 육회를 안 먹는 여자친구가 연초에 갔던 다이닝에서 육회로 만든 타르트를 먹고 감동을 받아서, 비슷해 보이면서 호평이 많은 소고기타르트를 주문했다. 직원분께서 친절하게 한입에 먹으라고 설명해 주시며 음식을 내어주셨고, 메기 뺨치는 빅마우스를 벌려서 한 입에 넣어보았다.
겉의 바삭한 검은색 타르트 부분과, 고기와 함께 버무려진 매콤 달콤한 맛이 꽤나 인상적이었지만, 소고기의 크기가 꽤나 크고 질긴 편이라, 여자친구는 아쉽게도 이전의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입맛이 날카롭지 않은 나는 듬뿍 들어간 고기에 만족하며 와인 한 잔을 금방 비울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우리가 애정하는 뇨끼가 나왔는데, 호박 베이스의 뇨끼라 그런지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던 비주얼은 아니었다. 사실 처음 후기를 찾아봤을 때는 버섯 크림 베이스의 뇨끼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시즌에 따라서 메뉴를 바꾸고 업데이트하시는 것으로 보인다.
맛을 표현하자면, 굉장히 부드럽고 달콤한 호박죽 위에, 잘 구운 감자볼과 캐슈넛을 올려서 먹는 느낌이었다. 좀 더 바삭하게 튀겨지듯이 구워진 뇨끼를 선호하는 우리에게는 약간 아쉬운 식감이었고, 호박과 캐슈넛의 조화가 약간 메인 음식 느낌이라기보다는 디저트류의 달콤함에 좀 더 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호박죽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나도 잘 먹을 만큼 맛있게 요리된 디쉬라고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항정살 베이컨을 곁들인 아마트리치아나 스파게토니가 나왔다. 라면처럼 살짝 꼬불꼬불한 파스타 면으로 나왔는데, 놀랍게도 먹으면서 정말 잘 만든 고급화된 스파게티 라면의 맛이 났다. (좋은 의미에서)
항정살이 곁들여져서 그런지 감칠맛이 일반 토마토 파스타보다 훨씬 강했는데, 그렇다고 엄청나게 특별한 맛이 난 것은 아니었다. 적당한 이태리 음식점에 가면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맛이어서 살짝 아쉬움이 있었다.
이렇게 음식 4가지를 비우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켰던 와인도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오후 2시부터 음주를 해서 그런 건지, 평소보다 비싼 와인을 시켜서 그런지, 와인이 잘 넘어가서 소주파인 나도 기분 좋게 잔을 비우고 나왔다.
메인으로 시킨 음식 2개는 아쉬웠지만, 식당이 얻은 유명세에 비해 음식 가격들은 나쁘지 않았고, 전체적인 분위기나 접객 서비스 경험은 너무 좋았다. 소고기타르트 등에서도 재료를 아끼지 않은 것이 느껴졌고, 특히 싸워도우브레드는 정말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가능하다면 아웃백 부시맨브레드 가져가듯이 집에 포장해서 가고 싶었지만, 설 동안 쭉쭉 찐 몸무게를 생각하여 직원 분께 여쭤보진 않았다.
🥐 2코스: 버티고개역 '버터힐'
밥을 다 먹고 지도를 살펴보니, 전에 저장해 놨던 카페가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버스를 타고 버터힐로 향했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던 동네였지만, 내려서 카페를 걸어 올라가다 보니, 왜 역 이름이 버티고개인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혹시나 가실 예정이라면 편한 옷과 운동화를 신고 가기를 추천한다.
카페는 생각한 것보다 더 작고 아담했지만, 장충동 방향으로 창이 확 트여있어 정겨운 서울뷰를 보면서 쉴 수 있었다. 일단 디카페인 옵션이 있어서 커피에는 불만이 없었고, 바닐라라떼도 적당히 달달하고 따뜻해서 추워진 몸을 다시 뎁힐 수 있었다.
하지만 품절됐다가 다시 생겨서 시킨 소금빵은,,, 충격적이게도 갓 구운 새 빵이 아니었다. 뭔가 어디서 잔뜩 식어버린 빵이었는데, 안쪽에 버터는 풍부하게 들어갔지만 조금 뭉쳐있어서 특출난 맛은 아니었다. 아까 싸워도우브레드를 먹고 계속 춤추고 있던 내 혀가 댄스를 멈출 정도로 차가움을 느꼈다.
소금빵은 실망스러웠지만, 커피와 함께 보는 풍경으로 디핀에서 쌓은 느끼함 지수는 모두 내릴 수 있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설날에 잔뜩 붙어버린 몸무게를 위해서 운동이 필요할 것 같아서,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용호야채곱창을 가기 전에, 한파를 뚫고 한남동에서 이태원까지 걸어가는 무모한 도전을 했다.
🥘 3코스: 효창공원앞역 '용호야채곱창'
그렇게 강추위를 뚫고 찾은 곳은, 3년 전 우연히 들렸다가 충격적인 야곱 맛에 감탄하고 저장해 뒀던 용호야채곱창,,, 그 당시엔 3호점이라고 써있었는데 지금은 여기 한 곳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야곱을 아시나요? 썰로 드립을 치며 식당 앞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테이블링 대기가 앞에 9팀이 있었다,,, 걸어가는 데에만 신경을 쓰다가 미리 대기를 건다는 걸 생각도 못하고 대략 1시간 30분 이상을 대기하게 되었다. 포기를 고민했지만, 이전 방문 때 차를 갖고 방문해서 소주를 못 마셨던 아쉬움에, 오래 걸리더라도 기다리기로 결정하고, 주변 다이소와 스타벅스를 배회하며 시간을 보냈다.
대략 1시간 정도 기다리니 입장 3번이 되어서 식당 앞으로 이동해서 대기했고, 사진에 있는 것처럼 담요랑 히터가 준비되어 있어서 다행히 추위에 벌벌 떨지는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식당 내 테이블 개수가 부족한 데다가, 제일 핫한 토요일이라 그런지 안에서 드시는 분들은 모두 소주와 야곱을 추가하고 있었고, 나가실 것 같은 분들은 볶음밥을 추가해서 이동한 후에도 30분을 넘게 대기했다.
2번 대기 분들은 절망적인 대기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포장으로 전환해서 가져가셨고, 우리는 1시간 20분쯤 됐을 때 미리 주문 후, 약 1시간 40분 만에 식당에 입장할 수 있었다. 오사카에서 오꼬노미야끼 줄 선 이후로 가장 긴 대기시간이었다. (가실 분은 무조건 테이블링 대기를 미리 걸어놓는 게 좋을 것으로 보인다.)
1시간 40분의 대기 후 미리 주문한 음식을 기다렸지만, 들어간 이후에도 대략 20분 이상을 기다렸다. 우리보다 늦게 들어온 손님들이 먼저 음식을 받아서 살짝 삔또가 상할 뻔했지만, 직원 분께서 늦게 나와서 죄송하다고 계란찜을 서비스로 주셔서 이해하기로 했다.
다행히 살짝 답답했던 대기 및 서비스와 달리, 맛은 3년 전에 먹었던 그 맛 그대로 충격적인 야곱 맛이었다. 매콤한 소스에 쫄깃한 막창과 고소한 곱창,,, 그리고 혈당 스파이크를 책임져 줄 우리의 순대까지 이 친구는 정말 모자란 면이 없는 팔방미인이었다.
너무 오래 기다려서 점심에 먹은 와인이 전부 날아갔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소주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 기다린 보람을 느낄 정도의 맛이었지만, 양이 많아서 이 집의 하이라이트인 볶음밥을 시킬 수 없었다,,, 다음 방문 때에는 순대를 빼는 대신 볶음밥 1인분을 시켜서 먹는 게 더 밸런스가 좋을 것 같다고 느꼈다. (순대도 맛있었지만 당면순대 특유의 냄새가 살짝 남은 것처럼 느껴졌다.)
정신없이 먹고 걷다 보니 주말미식투어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매일매일 다이어트를 외치지만, 평일에 받은 스트레스를 편하게 기분 좋게 푸는 방법은 역시 맛있는 음식만 한 것이 없다. 이러려고 돈 버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내일은 운동을 좀 해볼까 다짐해본다.
'맛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말 미식 투어] 건대 앞에서 찾은 진짜 오사카의 맛, '오코노미야키식당하나' (4) | 2025.02.24 |
---|---|
[주말 미식 투어] 동탄 와인바 '오 리틀 이태리' 내돈내산 리얼 후기 (2) | 2025.02.20 |
[주말 미식 투어] 동탄 카츠오모이, 광주 스멜츠, 방이동 별미곱창 본점 내돈내산 먹부림 후기 (3) | 2025.02.16 |
[주말 미식 투어] 무계획 대전 당일치기: 대추나무칼국수, 성심당 본점 & 케익부띠끄, 카페 에이트 (2) | 2025.02.15 |